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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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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역병]]과 계속되는 전쟁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ffffff,#1c1d1f><tablealign=center> || ||[[파일:Roman-Empire_565ad.jpg|width=100%]]|| || [[565년]] [[동로마 제국]]. ||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치세 말기부터 감소한 정치력과 역병, 그리고 오랜 전쟁으로 인해 6세기 후반의 동로마 제국은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렸다. 원래 유스티니아누스는 한탕 크게 정복해놓으면 거기서 나오는 세금으로 금방 재정손실이 복구될 것이라 예상했고, 실제로도 이를 염두에 두고 실행한, 이른바 계산된 확장이었다. 하지만 가장 나쁜 타이밍에 역병이 창궐하면서 전쟁으로 텅빈 국고를 매꿔놓지 못했다. 이때의 역병은 [[페스트]]로 추정되는데, 학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중세 흑사병]]에 못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이 시기를 제1차 페스트 혹은 선 페스트 시기라고도 할 정도였다. 유스티니아누스 본인마저도 감염되어서 골골 앓아누웠고 이후 사실상 폐인이 되었으며, 이후 [[마우리키우스]] 황제[* 전임 [[티베리우스 2세]]의 사위다. 티베리우스 2세가 아들이 없어 그가 황제를 이어받았다. 국고가 부족했기에 강력한 긴축 정책을 펼쳤으나 이 때문에 민심을 잃게 된다.]가 이를 어느 정도 수습하기 전까지 국고주의를 비롯한 온갖 재정부양책으로 모아놨던 제국의 국고가 모자라게 된다. 한동안 유스티니아누스가 만들어놓은 제국 영토 이곳 저곳에 구멍이 슝슝 뚫린 상태로 그 영토가 유지되었지만 제국 전체를 강타한 전염병으로 인한 막중한 손실에 [[동로마-아바르 전쟁|북방 민족의 침입]], [[사산 왕조]]와의 끝없는 전쟁, 제위를 둘러싼 국내 분열이 겹쳐 급속히 국력이 쇠약해져 갔으며, 서로마 권역의 영토는 지속적으로 날아가는 판이었고 이탈리아도 여기저기에 공백이 있는 상태로 [[라벤나 총독부]]가 겨우 유지되고 있는 판이었다.[* 제국이 얼마나 비틀거리고 있었는지를 제대로 보여줌과 함께 그동안 쌓아온 힘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던 게 확실히 보이는 부분. 또한 윗 각주의 현지 [[이탈리아인]]들의 로마 제국에 대한 시선이 복합적으로 바뀌었다는 서술과 맥락이 통한다. 현지의 이탈리아인 전체가 로마 제국을 제대로 잘 따르고 지지/지원해 준다면 그런 지도는 절대로 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그래도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는 건 현지 이탈리아인 중 일부는 랑고바르드의 지배도 거부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고학적으로는 현지에 이주한 [[로마인|동로마인]]들이 이탈리아화되거나, 반대로 이탈리아에 남아 있던 [[로마 원로원]] 계급의 옛 후손들이 그리스화되면서 서로 융합되어가는 양상이 관찰된다. 당연히 이런 부류들은 이탈리아의 잔존한 제국 영토에 있던 부류였고, 가장 동로마 제국을 미워했을 동고트족 군인들은 거의 대부분 [[동로마군]]에 남아 랑고바르드와의 전쟁에서 최선을 다해 싸웠다. 적어도 이탈리아에 남은 동고트족 군인들은 랑고바르드보다는 동로마 제국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음엔 이견의 여지가 없다.] 565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죽었을 때 제국의 재정은 완전히 파탄난 상태였으므로, 후계자 [[유스티누스 2세]]는 어쩔 수 없이 사산 왕조에 바치는 조공을 거부해야 했다. 한편 랑고바르드족은 제국이 동쪽에 관심을 돌린 틈을 타서 이탈리아를 침공하였고, 6세기 말 마우리키우스의 치세에는 로마 제국의 영토로 남은 이탈리아 영토는 반도의 1/3 정도에 불과하였다. 유스티누스 2세의 뒤를 이은 [[티베리우스 2세]]는 페르시아와 싸우면서도 북방의 [[아바르 칸국|아바르족]]은 공물로써 회유하려고 했다. 티베리우스의 장군 [[마우리키우스]]는 동부 전선에서 활약하였으나 조공만으로는 아바르족을 달래지 못하였다. 아바르족은 582년 발칸 지역의 [[시르미움]]과 [[싱기두눔]] 요새를 함락하였으며, 이에 맞춰 슬라브족들이 다뉴브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마우리키우스는 사산조의 [[호스로 2세]]와 화평 조약을 맺어 아르메니아에 접근할 권리를 얻었으며, 제국의 역량이 발칸반도에 집중될 수 있도록 하였다. 602년에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을 다뉴브 강 이북으로 축출하기는 했으나 그 뒤에도 서방 영토에 계속 이민족이 침입하자, 마우리키우스는 라벤나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황제 대리로서 총독을 두어 제국의 행정 효율성 강화에도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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